관동지방에서 대립하던 호조, 겐신과 신겐이 이처럼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던 이유는 교토로 가려는 다이묘들 사이의 경쟁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때 당시 왜 그렇게 서둘러 교토로 가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을까요?
1. 교토에 가야 전국을 통일할 수 있다
전국시대 혼란기에 전국에서 센고쿠 다이묘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각 영지에 수입이 끊기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교토에 있는 천황과 쇼군에게도 예외는 아니었고,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생기게 되는데요. 이에 쇼군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천황이 굶주리고 계시니, 누군가 이 어지러운 교토를 정리해달라'면서 관동 지역의 다이묘들에게 지원을 요청하게 됩니다. 어서 너희들 중 누군가가 와서 힘으로 이 무질서한 교토를 관리하라는 명분이었습니다.
신겐이나 겐신과 같은 관동 다이묘들 입장에서도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어차피 교토로 가야 전국을 통일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니, 당연히 진작부터 교토로 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쇼군의 명령 없이 교토로 진격한다면 그것은 신하가 천황의 교토를 찬탈하는 모양새였기 때문에 명분이 안서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쇼군이 멀리 있는 자신들을 교토로 불러들이는 명을 내리니 서로 교토로 들어가겠다고 싸움이 된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을 교토 주변의 다이묘들이 두고 볼리 없었습니다. 때문에 관동지역의 강자들이 전쟁이 일어나는 동안 미카와와 오와리 지역 등 교토 주변 다이묘들이 먼저 움직이게 되는데요. 여기서 오다 노부나가가 등장합니다.
2. 오다노부나가는 어떤 사람인가
오다 노부나가는 원래부터 금수저 출신의 다이묘는 아니었습니다. 오다 가문은 아버지 시절부터 배신과 권력다툼으로 권력에 오른 집안이었지요. 덕분에 오다 노부나가의 어린 시절은 매우 불안정했다고 합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강점은 전통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요. 오다 노부나가는 어린시절부터 바보행세를 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아마 권력투쟁에서 표적이 되는 것을 피하려고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노부나가는 말타기가 취미였는데, 그 때문에 말을 타면서 자기 영지의 사정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전쟁에서 유리한 지형, 비밀통로 같은 것도 다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칼을 가슴 속 깊이 숨길 줄 아는 자였으며, 등용에 있어서도 실리위주의 인사를 하는 자였습니다. 그에게 명분이나 이름값은 중요하지 않았으며, 그만큼 인재를 보는 눈도 뛰어났고, 지역의 속성과 전망을 예측하는 능력 또한 뛰어났다고 합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매우 잔혹한 성격도 가지고 있었는데요. 미노 이와무라 성을 함락할 때 항복하고 온 장수들을 자신의 친숙모를 포함해서 나가라 강변에 거꾸로 매달아 찔러 죽인 일화, 기나이의 고야산의 문도 1383명을 포박해서 살해한 일화, 아마가사키 부근에서 아라키 무라시게 알족의 부녀자 122명을 십자가에 매단 후 찔러 죽인 일화 등 오다 노부나가의 잔혹성을 보여주는 일화들 또한 많습니다.
3. 오케하자마 전투가 일어나게된 배경
오다 노부나가가 정상권의 다이묘로서 성장하게 된 결정적인 전투는 바로 오케하자마 전투입니다. 오케하자마 전투는 가와고에 성 전투, 이 쓰쿠시 마 전투와 더불어 일본 3대 기습으로 유명한데요. 오다 노부나가가 불과 2천여 명의 병력으로 3만여 명의 대군에 승리를 거둔 일본 전국시대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 중 하나입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아직 어렸을 시절에 당시 오다 가문의 경쟁세력이었던 이마가와 가문은 도카이도 지역에서 매우 강한 세력이었습니다. 그리고 미카와를 지배하고 있었던 세력으로 마쓰다이라 가문이 있었는데요. 1548년에 오다 가문은 미카와를 침공하게 되고, 다급해진 마쓰다이라 가문은 이마가와 가문에게 원병을 요청합니다.
이마가와 가문은 마쓰다이라 가문의 6살난 아들을 인질로 보내라는 조건을 제시하게 되는데, 그 아들의 이름은 마쓰다이라 다케치요, 훗날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입니다. 그런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인질로 가던 중에 오다 가문에게 납치를 당하게 되고, 오다 가문은 이에야스를 인질 삼아 마쓰다이라 가문에게 항복을 요구합니다. 이마가와 가문은 항복을 거절하지만, 오다 가문은 이에야스를 죽이지 않고 데리고 있게 되는데요. 이때부터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서로 친해지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1551년에 갑작스럽게 오다 노부히데가 사망하자, 그의 아들 오다 노부나가와 오다 노부유키 사이에 권력투쟁이 생기고, 그 틈을 놓치지 않았던 이마가와 가문은 미카와 접경지역에 있는 나루미성과 가사데라 성을 포섭하고, 오다 노부나가가 지배하고 있던 오다카 성과 구쓰카케 성을 빼앗는 데 성공합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오다 가문의 두 형제 사이의 내분으로 집안 가신들이 이마가와 가문 쪽으로 등을 돌려버리게 되고 오다 가문은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주도권을 쥔 이마가와 가문은 오다 가문과의 휴전의 조건으로 마쓰다이라 가문의 이에야스를 내놓을 것을 요구하게 되고, 이에야스는 이마가와 가문으로 가서 10년 동안 인질생활을 하게 됩니다.
4. 오케하자마 전투에 이마가와 가문이 3만명을 어떻게 동원했을까?
앞서서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이마가와 측의 병력이 무려 3만 명에 이른다고 언급했는데, 그게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마가와 가문이 마쓰다이라 가문을 가신으로 삼고 연합한 데다가 그 주변 세력들을 포섭하고 병력을 모집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에야스가 이마가와 가문의 인질이 되고, 조카사위로까지 삼은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지요. 한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10년 동안 인질생활을 하는 동안 다이묘들의 각축전으로 혼란의 연속이었던 미카와 지역의 가신들은 미카와를 지키기 위해 똘똘 뭉치게 됩니다. 이들은 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뒷받침하는 가장 든든한 군대가 됩니다.
5. 오케하자마 전투의 전개
이마가와 가문과 마쓰다이라 가문의 연합으로 위기에 빠진 오다 가문은 이마가와 가문의 진출을 막기 위해 이마가와 가문이 장악한 나루미성과 오다카 성 주변에 성채를 둘러쌓아서 고립시키려는 전략을 펼치는데요. 이에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1560년 6월 5일, 직접 3만 명에 이르는 이마가와 가문과 마쓰다이라 가문의 연합 병력을 이끌고 오와리를 전격 침공하면서 오케하자마 전투가 시작됩니다.
요시모토는 오다 노부나가의 기요스성을 탈환하면 전쟁에서 이긴다고 판단하고, 기요스 성 앞에서 진을 치고 도쿠가와 이에야쓰를 선봉에 세웁니다. 당시 이에야쓰의 진격로는 해안을 따라 나와서 산을 통과해야 하는데, 당시 미카와 지역은 오랜 전투로 인해 해안 진출로 부근에 이미 여러 요새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선봉에 있던 이에야쓰와 미카와 가신단은 보란 듯이 3개의 요새를 함락시킵니다. 이에 요시모토는 그만 안심을 해버리고 그날 밤에 오케하자마 협곡에다 본진을 치고 파티를 벌이게 됩니다.
담력이 강한 오다 노부나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전병력을 데리고 나가서 그 중 500명은 언덕 위에 성채를 짓게 합니다. 이마가와의 군대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 사이, 오다 노부나가는 어린 시절에 영지 곳곳을 다 살펴보면서 파악해놨던 비밀통로를 통해 이마가와 진영의 코앞까지 진격합니다.
당시에는 비가 오는 날씨였고, 이마가와 측은 군대가 코앞에 있는 줄도 모르고 파티까지 벌이고 있었습니다. 당시 이마가와가 데리고 있었던 본대 병력은 3만이 다 있었던 것은 아니고 5천 명 정도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노부나가의 병력이 훨씬 적었는데요. 오다 노부나가는 그 적은 병력을 데리고 파티를 벌이고 있는 이마가와의 본대를 급습합니다. 완벽하게 허를 찔린 이마가와 군대는 참패하게 되고,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이 급습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전투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이마가와 가문을 배신하고 바로 오다 노부나가와 손을 잡게 됩니다. 아마도 10년 인질생활동안 둘 사이의 친분이 작용했던 것으로 보는 설도 있으나, 뛰어난 능력을 가진 개인을 가차 없이 살해해버리는 오다 노부나가의 성격상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가 도쿠가와 이에야쓰의 손을 잡은 것은 비단 친분뿐만이 아니라 그가 데리고 있었던 미카와 가신단의 뛰어난 전투력과 충성심을 높이 샀던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오케하자마 전투는 오다 노부나가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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