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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일본 전국시대 통일전쟁 2편.

by 니루루 2022. 10. 2.

 

1. 일본 전국시대 최강의 라이벌

일본 전국시대 최강의 라이벌이라 불리는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은 공통점이 많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정통의 후계자가 아니었고 아버지에게 구박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걸 이겨내고 어린 나이에 자신의 실력을 전장에서 입증하며 리더로 성장했지요. 이렇게 비슷했던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은 각각 가이의 호랑이, 에치고의 용이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용호상박의 최고의 무장들이었지만, 각기 가진 장점은 달랐습니다.

2. 가이의 호랑이 다케다 신겐

다케다 신겐은 매우 권모술수가 능하고 유연한 전략가였습니다.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희생도 치를 수 있고, 비열한 술수를 쓰는 것에도 능숙한 인물이었지요. 도쿠가와 이에야쓰가 전국시대를 통일하여 쇼군에 오른 직후에 부하들에게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케다 신겐은 나에게 매우 두려운 존재였다.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나는 그에게 패배하고 도망가면서 말 위에서 변을 지릴 정도였다. 정말 존경하면서도 무서운 사람이다. 나는 그에게 백성을 다스리는 마음, 전투에 임하는 자세 그리고 인내와 기다림을 배웠다. 그때의 패배가 내 인생에 얼마나 큰 교훈이 되었는지 모른다. 다케다 신겐은 나의 진정한 스승이다." 물론 정말 이에야쓰가 이렇게 말했는지 정확한 사실은 아니라고 합니다. 다케다 신겐이 다스리던 영토인 가이는 땅이 풍요롭고 기름진 땅이 아니었습니다. 굉장히 척박한 땅이었지만 신겐은 농민들이 식량 생산을 해야 전투가 가능하다고 여겼으므로 농민들을 괴롭히는 노역을 전면 중지했습니다. 그리고 농민들에게 세금을 걷을 때에도 기존에는 영주가 70%를 가져갔다면 신겐은 50%만 세금을 떼는 파격적인 정치를 펼칩니다. 백성들에게 신망이 두터워진 신겐은 이런 영향력을 바탕으로 가이를 둘러싼 주변국들을 정복하면서 시나노국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온화한 정책을 펼쳤지만 냉정한 모습 또한 가지고 있었는데, 신겐은 시나노 국을 통합할 때 자신에게 저항하는 약소국들의 사람들은 가차없이 처단합니다. 그런 식으로 약 3천 명의 포로를 학살했으며, 저항했던 지역의 여자와 아이들은 무조건 노예로 부리는 잔혹한 면모를 보입니다.

3. 에치고의 용 우에스기 겐신

호조 우지야스가 우에스기 겐신에 대해 한 말이 있습니다. "신겐과 노부나가는 곁과 속이 항상 같지 않아 부탁할만한 인물이 못된다. 그러나 겐신은 보증을 선다면 백골이 되더라도 의리를 지키는 인물이다." 재밌는 것은 겐신과 가장 많이 싸운 사람이 호조 우지야스였습니다. 이런 인물이 자신의 적인 겐신에게 이런 찬사를 보낼 만큼 의리파로 신망이 두터웠던 인물이었던 것이죠. 우에스기 겐신의 인품에 대한 일화를 또 한가지 소개해 드리자면, 다케다 신겐이 겐신과의 전투 중 염전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당시에 전쟁 중에 소금은 매우 귀중해서 그걸 잃어버렸다는 것은 전쟁에서 패할 수도 있는 위기적인 상황입니다. 이 때 겐신이 적군인 신겐에게 소금을 보내줍니다. 어째서 적에게 소금을 내주냐고 반발하는 부하들에게 겐신은 "비록 전쟁 중이라도 백성들은 적이 아니므로 백성들이 고통을 받아서는 안된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4. 다케다 신겐 VS 우에스기 겐신

당시 쿄토에 있는 쇼군은 힘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쇼군은 무장들을 불러들여 자신을 보호하려고 했습니다. 다이묘들에게 SOS 요청을 한 것이지요. 그래서 싸움을 잘하는 무장을 찾아보니 겐신, 신겐, 우지야스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쇼군은 그들을 교토로 들어오라는 명을 내리게 됩니다. 교토에 입성한다는 것은 쇼군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자연스레 교토를 정복, 전국시대를 통일할 수 있는 결정적인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세명의 다이묘는 관동지방에서 치열한 대립구도를 형성하는 중이었고, 한명이 떠나면 누군가가 서로를 칠 것이 자명했기에 자기 지역을 쉽사리 비울 수가 없는 구조였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은 마음이 급해졌지요. 어서 서둘러 교토로 가기 위해서는 지금의 관동 삼국지 국면을 끝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붙은 것이 바로 가와나카지마 전투 4차전입니다.

5. 가와나카지마 전투

가와나카지마는 에치고의 접경지대로서 매우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이기에 걸핏하면 신겐과 겐신이 맞붙는 곳이었습니다.  겐신은 북에서 내려오고, 신겐은 남에서 올라오는 형세였지요. 그러나 실제로 큰 전투는 안 벌이고, 서로 눈치싸움만 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4차전에서 대규모의 전투를 결심합니다. 우에스기 겐신의 병력은 약 1만 3천 명, 다케다 신겐의 벽력은 약 2만 명이 이곳에서 맞붙게 되는데, 당시 전국시대에서 만 명 단위의 전투는 사활을 건 전면전을 뜻했습니다. 당시 가와나카지마 지역은 험악한 산악지대로 둘러싸여서 가운데 강을 끼고있는 지형이었습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입장이 신겐이고, 겐신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입장이었는데, 가운데 강을 두고 오히려 반대로 신겐이 북쪽 산자락에다가 진영을 설치하고 겐신은 남쪽 산자락에 진영을 설치해버립니다. 이런 상식적이지 않은 진영 설치에 대해서 여러 역사가들의 다양한 설이 있습니다. 서로 전쟁이 지리하게 길어지니까 양쪽 다 먼저 퇴로를 끊고 뒤로 치자는 생각을 동시에 하는 바람에 반대편으로 올라갔다는 설, 서로 싸우려고 갔는데 엇갈려서 진영이 반대로 설치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신겐이 서둘러서 자기 원래 진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신겐은 기발한 전략을 세우게 됩니다.

6. 다케다 신겐의 신출귀몰한 전략

신겐의 군대는 원래 특출난 기병부대로 유명했습니다. 기병부대는 싸울때는 어떤 싸움터에서 유리할까요? 당연히 말이 다니기 힘든 산악지역보다 평지에서 싸우는 것이 훨씬 유리합니다. 따라서 다케다 신겐은 우에스기 겐신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무조건 강 중앙으로 나와서 평지에서 전투를 벌일 것을 유도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라 추측합니다. 다케다 겐신은 이걸 반대로 뒤집어서, 우에스기 겐신을 속이기 위해 신겐은 병력을 데리고 자기 진영에서 다시 강 중앙으로 이동하는 전략을 씁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신겐은 강 중앙에 병력 8천 명만 데리고 나갑니다. 본인이 미끼가 되어 강 중앙 지역으로 나와버린 겁니다. 그리고는 1만 2천 명의별동부대를 몰래 움직여서 다케다 신겐 진영 뒷공간으로 치는 양면전술을 펼칩니다.

7. 우에스기 겐신의 빠른 돌격

그러나 우에스기 겐신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겐신은 이러한 전략을 파악한 즉시, 다케다 신겐의 별동대가 뒤를 치기전에 야밤을 틈타서 자신의 전 병력을 강중앙으로 주저 없이 이동시켰습니다. 겐신의 이 판단은 놀라웠습니다. 따라서 병력을 나누지 않았다면 다케다 신겐의 병력이 무조건 우위였을텐데, 신겐이 병력을 나누는 바람에 강 중앙에서 그가 생각한 타이밍보다 빨리 붙어버리면 오히려 겐신의 병력이 우위인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강 중앙에서 다케다 신겐이 자신들에게 돌진하는 겐신의 전병력을 마주쳤을때가 자신이 평생에서 가장 놀란 일이었다고 합니다.

겐신의 입장에서는 이 전투가 사생결단이었습니다. 뒤쪽에는 만 2천 명의 별동대가 쫓아오는 상황이었기에 만약에 시간이 지체되어 뒤에 오는 별동대가 합류하게 되면 양쪽으로 끼어서 샌드위치가 되는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겐신은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강 중앙에서 아직은 열세인 신겐의 부대를 마주쳤을때 단칼의 승부를 봐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에스기 겐신은 소부대 돌격을 시작합니다. 반면에 다케다 신겐의 입장에서는 무조건 뒤에 별동대가 적의 뒤를 포위할 때까지 가진 적은 병력으로 버텨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여기서 다케다 신겐은 다시 그 적은 군대를 양분하여 학익진을 펼칩니다. 냉철한 겐신은 그대로 들어가면 학익진에 의해서 양면 협공을 당할 것을 바로 인식하고는 정예부대를 데리고 직접 돌격하여 다케다 신겐을 직접 잡으려는 판단을 내립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 때마침 다케다 신겐의 별동부대가 도착해버리고, 겐신은 별동대가 오기전까지 신겐을 잡았어야 했지만 결국 실패합니다. 이게 얼마나 촉박한 상황이었냐면 마음이 급한 우에스기 겐신이 직접 돌파해 들어가 다케다 신겐을 칼로 공격하고 신겐이 겐신의 칼을 부채로 막았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부하가 했다는 설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이긴 합니다만 아무튼 다케다 신겐의 코앞까지 진격하는 데는 성공했던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입니다.

 

8. 가와나카지마 전투의 교훈

결국 다케다 신겐은 버텨냈고 우에스기 겐신은 전면철수를 결정합니다. 별동대가 오자마자 강 남쪽에 있던 겐신은 바로 강을 건너서 북쪽으로 올라가게 되고, 뒤따라오던 신겐의 병력에 의해 많은 피해를 당합니다. 결국 신겐이 시나노 전 지역을 차지하게 되고, 이 전투는 다케다 신겐의 승리로 끝나게 됩니다. 하지만 양쪽 다 속시원한 결과는 아니었습니다. 이 이후 신겐과 겐신 둘 다 다시는 이런 식으로 대규모 전투를 벌이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대규모 전투로 싸우면 이겨도 이긴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인데요. 전국시대에는 약해진 틈에 누가 누굴 칠지 모르니까 이런 대규모의 전투를 벌였다가 병력손실이 커지면 자신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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