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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일본 전국시대 통일전쟁 4편

by 니루루 2022. 10. 19.

오다 노부나가는 전쟁에서 이겼지만 아직 교토로 진군할 명분이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불러줘야 하는데, 마침 쇼군의 동생이었던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노부나가를 찾게 됩니다. 당시 쇼군이 암살당했기 때문인데, 동생인 요시아키가 노부나가에게 SOS를 치게 된 것이죠. 노부나가는 요시아키를 쇼군으로 옹립하겠다는 명분으로 순식간에 교토를 장악, 요시아키를 쇼군으로 옹립하고 맙니다.

 

쇼군이 된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오다 노부나가에게 원하는 것을 말해보라고 합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각 도시의 미래 가능성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탁월한 식견이 있었고, 그는 사카이, 오쓰, 구사쓰 지역을 자신에게 달라고 말합니다. 당시 요시아키는 노부나가의 부탁이 너무 소소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오다 노부나가가 그 세 지역을 요구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사카이, 오쓰, 구사쓰 지역은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였기 때문인데요. 오다 노부나가는 앞으로의 전쟁은 돈과 조총이 좌우할 것이라는 것을 꿰뚫어 봤습니다. 포르투갈을 통해서 이 세 지역으로 조총이 들어오고 무역이 활성화되면 상업이 부흥되면서 돈이 모일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예측은 제대로 맞아떨어졌습니다. 당시 1553년 전국시대 다이묘들의 쌀 보유량을 보시면, 다케다 신겐은 53.3만석, 우에스기 겐신은 49.9 만석, 호조 우지야스는 70.7만 석, 오다 노부나가는 57.1만 석이었는데, 1573년 쌀 보유량을 살펴보면, 다케다 신겐은 88.3 만석, 우에스기 겐신은 89.8만 석, 호조 우지야스는 132.3만 석, 오다 노부나가는 무려 300.3만 석을 보유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오다 노부나가가 사카이, 오쓰, 구사쓰 지역을 차지한 결과였습니다.


교토에 입성한 노부나가는 대대적인 탈규제 정책을 펼치는데요. 먼저 교토로 가는 상인들의 출입을 자유롭게 허용합니다. 노부나가 이전에는 상인들이 교토로 가려면 승려들이 관리하는 조합에 가입해야만 교토에 출입이 가능했는데요. 일본은 승려들이 경제적인 이권에 깊이 개입하고 있는 구조였기 때문에, 그걸 꺼려했던 오다 노부나가는 상인의 출입을 자유로이 허용하면서 승려들의 강력하게 반발을 사게 됩니다.

 

노부나가의 가신들도 노부나가가 승려들을 자극하는 것을 말렸습니다. 승려들이 운영하는 조합에서 들어오는 세금 또한 적지않은데 그들의 이권을 건드는 것은 노부나가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오다 노부나가는 우선순위가 확실했고 어느 쪽이 더 이득이 되는지 계산하는 능력이 탁월했습니다. 노부나가는 일단 교토가 자유 상업도시로서 번창해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일본 승려들에게 받는 세금보다 나중에는 훨씬 더 커질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노부나가의 계획대로 시행해보니 그가 관리하고 있는 도시들은 상업적으로 크게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특징인 지역봉건제가 가지는 이점은 도시 간의 경쟁을 통해 각 도시의 지역 특산품 개발에 열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지역상품만 특권 화하는 것에 열중한다는 것이 또 단점이기도 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계획은 내가 관리하는 지역의 시장, 조합뿐만 아니라 전국 시장에서의 경쟁체제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근현대의 자유시장경제 비슷한 생각을 노부나가는 앞서서 생각해냈던 것이죠. 이러한 노부나가의 도시계획을 이른바 '규제 없는 즐거운 시장'이라 불리는 '라쿠시' 체제라고 합니다.


한편 오다 노부나가가 먼저 교토에 입성한 탓에 일본 전국시대 다이묘들은 매우 당황하게 되는데요. 노부나가가 그렇게까지 빨리 교토로 입성할 것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허를 찔린 것이지요. 각 지역의 일본 전국시대 다이묘들은 노부나가를 향해 칼을 들기 시작했고, 노부나가 역시 교토로 입성한 이상, 전국의 모든 다이묘들의 표적이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표적이 된 노부나가는 힘을 키워야 했습니다. 당연히 주변 세력들을 포섭하면서 세력을 확장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데요. 이 과정에서 쇼군 요시아키도 처음엔 오다 노부나가를 좋게 봤었으나, 교토의 모든 실권을 자신이 아닌 노부나가가 쥐고 있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전국 각지의 다이묘들에게 밀서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밀서의 내용은 역도 노부나가를 처치하라는 명령이었는데, 흥미로운 것은 오다 노부나가 또한 비슷한 시기에 쇼군의 이름으로 다이묘들을 교토로 초대한다는 밀서를 보낸 것이었습니다. 센고쿠 다이묘들 입장에서는 전혀 서로 다른 쇼군의 밀서 2장을 받게 된 셈이었습니다.

에치젠의 다이묘 아사쿠라 요시카게는 노부나가의 밀서를 보고는 자신은 교토에 가지 않는다고 선언합니다. 노부나가의 속셈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변 세력을 확장해야 했던 노부나가는 진작부터 오우미, 에치젠을 노리고 있었고, 요시카게는 이를 알았기에 당연히 교토 초대를 거절합니다. 그리고 이를 빌미로 노부나가는 전격적으로 에치젠을 침공하게 됩니다.

 

전투 초반에 아사쿠라는 노부나가의 맹공에 고전을 면치 못합니다. 그런데 사고가 터지게 되는데요. 노부나가의 매제였던 아자가 나가마사가 노부나가를 배신하고 아사쿠라와 연합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노부나가가 노리던 오우미와 에치젠 지역의 다이묘들이 연합을 형성하게 된 것은 노부나가를 매우 당황하게 합니다.

 

노부나가의 매제 아사이는 노부나가가 신뢰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노부나가는 그가 배신한 사실에 큰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거리다가 아사쿠라를 몰아붙이고 있는 시점에서 오우미의 다이묘였던 아자이가 배신을 하면서 졸지에 협공을 당하는 형국이 되어버렸습니다. 노부나가는 절대로 무모한 짓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이 퇴각하게 됩니다.

 

교토로 돌아온 노부나가는 아라이에 대한 분노를 되새기며 군대를 재정비하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노부나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연합하여 아사이와 아사쿠라 연합을 공격하기 위해 진군하는데요. 이 전투를 아 네 가와 전투라고 합니다. 하천을 두고 양 연합이 대치하며 싸우는 전투였는데, 이 하천이 폭이 넓고 긴 하천이 아니라, 사람이 도보로 충분히 건널 수 있는 작은 하천이었습니다.

 

이 하천을 두고 노부나가 연합과 아사쿠 연합이 대치를 하게 되는데, 노부나가 앞에는 아사쿠라가 있었고, 이에야스 앞에는 아자니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아라이에 대한 적개심이 강했기 때문에 이에야스 부대와 자리를 바꿔서 아자 이를 직접 대적할 생각이었습니다. 병력도 상대적으로 노부나가가 더 많은 상황이었지요. 그렇게 아자이와 싸움을 시작한 노부나가는 아자이의 선봉부대에 노부나가 군대가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막상 붙어보니까 이자이의 군사력이 보통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아사쿠라 군대를 순조롭게 격파하고 있었습니다. 이에야스는 그대로 밀고 들어가서 아사쿠라 군대를 밀어내고 그 길 그대로 돌아서 노부나가와 싸우고 있는 아자가 군대의 후방을 치기 시작합니다. 아자이는 결국 후퇴를 하게 되는데요.

 

여기서 추격을 했어야 했지만, 노부나가 부대의 피해가 워낙 심각했기 때문에 도저히 추격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할 수 없이 교토로 돌아오게 됩니다. 심기일전한 전투에서 승리를 하긴 했지만 결국 오우미 지역을 먹지 못한 상황이 되자, 교토 주변 다이묘들은 이에 힘을 얻고 이후에 반 오다 노부나가 연합을 형성하게 됩니다.

 

노부나가는 먼저 전투 승려들의 본거지였던 이시야마 혼간 지를 공격합니다. 이시야마 혼간 지는 말은 사찰이었지만, 사실상 철벽 요새였고, 오다 노부나가의 군대는 승려들의 조총부대에 의해 번번이 깨지게 됩니다. 승려들의 리더였던 혼간지 겐뇨는 교토에 있는 노부나가를 처단하기 위해 북쪽에 있던 아자가, 아사쿠라 연합과 동맹을 맺고, 서쪽의 모리, 동족의 다케다 신겐까지 끌어들이게 됩니다.

 

그러면서 완벽한 오다 노부나가의 포위망을 형성하게 되는데요.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또 다른 승려의 본산지였던 엔라쿠지에서 노부나가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엔라쿠지는 교토 뒷산이었기에 노부나가 입장에서는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거지요. 노부나가는 이대로 엔라쿠지와 혼간지 동시에 싸움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합니다.

 

노부나가는 가까이 있는 엔라쿠지부터 없애야 한다고 결정하고, 엔라쿠지에 불을 질러버립니다. 그뿐 아니라 엔라쿠지 아래 마을까지 불 질러서 없애버리는데요. 불을 피해서 달아나는 사람도 전부 학살해버립니다. 이 엔라쿠지 방화사건으로 수 천 명 이상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일본 사회에 굉장한 충격을 줬었는데 일본의 승려는 유럽의 신부와 같이 매우 고귀한 존재로 여겼었기 때문에 아무리 다이묘라지만 사찰을 불 지르고 승려들을 학살한 것은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노부나가가 단순히 힘으로 그들을 짓눌러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노부나가가 이룩하려 했던 자율시장체제에 매력을 느끼고 이미 이권을 가지고 있는 세력들이 상당히 많았고, 그러한 정치적 기반 위에서 이러한 잔혹한 일들을 벌일 수 있었지요. 이처럼 노부나가는 엔간해서는 타협을 하지 않고 강경하게 진압하여 자신을 중심으로 각 지역들을 통합하려 했습니다.

 

노부나가에 대한 포위망이 형성된 시점에서 엔라쿠지 방화사건까지 일어나자, 관동지역의 다케다 신겐은 본격적으로 오다 노부나가를 노리기 시작합니다. 다케다 신겐의 입장에서 대치하고 있는 겐신이 있기 때문에 오다 노부나가를 치는 일은 속전속결로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신겐이 노부나가를 치기 위해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지를 지나쳐야만 했습니다. 여기서 다케다 신겐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드디어 맞붙게 됩니다.

 

이에야스는 1만 명의 병력, 신겐은 2만 8천 명의 병력을 가지고 있었지요. 신겐은 전국 최강이라 불리는 기마부대를 가지고 있었고, 둘이 붙은 결과 다케다 신겐이 이에야스를 완전히 압도합니다. 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날의 패배는 자기 평생에 가장 무참하게 진 치욕의 날이었다고 언급했을 정도로 다케다 신겐은 이에야스의 병력을 완전히 제압해버립니다.

 

이 전투에서 살아남은 이에야스의 부하가 열 명 남짓했다고 하니 얼마나 처참했는지 알 수 있지요.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그동안 교토 근방에서는 최강의 부대로 이름을 날렸는데, 관동지방의 맹주와 막상 싸움을 해보니 군대의 수준부터가 달랐던 겁니다. 싸움을 잘하는 군대라 하면 전투를 하는 장소의 지형을 완벽히 파악하고, 그 지형에 맞게 전술과 대형을 가다듬어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데, 다케다 신겐의 부대는 정찰대부터 그 수준을 달리했습니다. 다케다 신겐의 정찰대는 이에야스의 동선을 완벽히 파악했고, 좋은 지형을 선점하여 유리한 위치에서 완벽한 전투를 치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양동작전이었습니다. 노부나가 포위망이 형성된 상황에서 다케다 신겐이 이에야스 족으로 내려오고, 같이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던 아사이와 아사쿠라 연합도 그와 동시에 노부나가를 공격했습니다. 노부나가 입장에서는 무참히 패배한 이에야스에 지원병을 보내줘야 했지만 고작 3천 명만 보내주는데, 이에야스는 노부나가의 성격을 알기에 이에 대한 불만을 표출할 수도 없었습니다.

 

거의 모든 병력을 잃은 이에야스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었습니다. 이에야스는 병력이 많아 보이게 하기 위해 성벽 곳곳을 등불로 밝히는 전략을 펼칩니다. 그리고 일부러 성문을 활짝 열어놓는 과감한 결정을 내립니다. 어떻게든 다케다 신겐이 자신을 지나 아자가, 아사쿠라 연합과 합류하지 못하도록 시간을 끌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다케다 신겐은 재빠르게 이에야스의 의도를 파악했고 과감하게 이에야스가 있는 성을 포기하고 바로 교토로 올라가버리는 예리한 판단을 내립니다. 노부나가의 오와리 지역은 다케다 신겐과 아자가, 아사쿠라 연합의 양면 협공을 받게 되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 찾아온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노부나가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는 다이묘 중에 한 명인 아사쿠라 요시카게가 폭설을 핑계로 교토로 오지 않는 겁니다. 신겐은 이것에 당황하여 요시카게에게 여러 번의 서신을 보내지만 요시카게는 계속 무시합니다. 이건 지금까지도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아있는데, 아마 다케다 신겐의 군사력이면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오다 노부나가를 혼자 힘으로 처리해도 남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신겐에게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한편, 이에야스는 자신을 상대하지 않고 바로 교토로 올라가는 신겐의 결정에 매우 당황하는데, 여기서 두 가지 선택지 중 결정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미 전세가 기울어진 상황에서 반 노부나가 세력에 합류를 할 것인가, 아니면 노부나가를 끝까지 지킬 것인가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이에야스는 노부나가를 배신하지 않고, 교토로 진격하는 다케다 신겐을 추격하기 시작합니다. 이 판단이 정말 과감했던 것이 이미 신겐과 이에야스는 전투에 제대로 붙어서 신겐이 압도적으로 이겼는데, 진 이에야스가 이긴 신겐의 뒷덜미라도 잡겠다는 생각으로 추격을 할 수 있다는 게 일반적으로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반 노부나가 연합에 설 수 있는 선택지도 있었던 상황에서 말이지요.

 

과연 오다 노부나가는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서 어떻게 이 위기를 넘길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