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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마 6세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타이의 여론은 친독적이었다. 일찍이 영국과 프랑스에 영토를 빼앗긴 적이 있고 독일은 철도개발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마 6세는 중립을 지키다 1917년 미국이 대독 선전포고를 하고 연합국의 승리가 확실해지자, 연합국 측에 가담하여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이 결과 타이는 파기 강화 회의에 전승국의 일원으로 참석했으며, 국제연맹에도 가입되었다. 이러한 기회를 이용하여 불평등 조약 폐기를 위한 조략은 많은 결실을 보게 되었는데, 특히 외무성 고문으로 있던 새(Sayre)의 역할이 컸다. 2. 피 분과 프리디 라마 7세 때인 1932년 피분, 프리디 등이 무혈혁명을 일으켜 타이는 입헌군주국이 되고, 국왕의 권한은 약화되었다. 헌정 혁명 이후 타이의 ..
동남아시아의 태동 동남아시아 각국의 고대역사는 캄보디아, 베트남을 제외하고는 거의 추적할 수 없다. 게다가 동남아시아 각국간의 교섭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동남아시아 고대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푸난과 첸라 1~2세기에 동남아 최초의 국가가 출현하였는데, 이것이 푸난으로 오늘날의 캄보디아 지방에 해당되며 인도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푸난은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의 자야워라만 1세 때 전성기였으나, 6세기 말 약화되고 첸라가 7세기에 캄보디아, 라오스 전역을 통일했다. 첸라는 곧 남쪽의 물첸라, 북쪽의 뭍첸라로 분열되었다가 9세기 초 자야워라만 2세에 의해 재통일되고 앙코르왕국이 건설되었다. 앙코르 왕조 자야워라만 2세부터 앙코르 톰의 건설이 시작되었다 하여 이 이후를 앙코르 왕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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