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의 태동
동남아시아 각국의 고대역사는 캄보디아, 베트남을 제외하고는 거의 추적할 수 없다. 게다가 동남아시아 각국간의 교섭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동남아시아 고대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푸난과 첸라
1~2세기에 동남아 최초의 국가가 출현하였는데, 이것이 푸난으로 오늘날의 캄보디아 지방에 해당되며 인도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푸난은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의 자야워라만 1세 때 전성기였으나, 6세기 말 약화되고 첸라가 7세기에 캄보디아, 라오스 전역을 통일했다. 첸라는 곧 남쪽의 물첸라, 북쪽의 뭍첸라로 분열되었다가 9세기 초 자야워라만 2세에 의해 재통일되고 앙코르왕국이 건설되었다.
앙코르 왕조
자야워라만 2세부터 앙코르 톰의 건설이 시작되었다 하여 이 이후를 앙코르 왕조라 부른다. 수러야워라만 2세 때는 앙코르와트라는 예술적 가치가 높은 사원을 건립하여 크메르 민족의 영광을 높혔고, 참파와 베트남을 공격하였다. 자야워라만 7세 때는 인도차이나반도 최대의 강국으로 등장하였으나 사망 후 국력이 약화되더니, 1431년 아유타야가 아코르 톰을 점령하였다. 크메르인들이 수도를 프놈 펜으로 옮긴 이후 캄보디아는 항상 타이, 베트남에 시달림을 받았지만, 독립왕국으로 남아있으면서 크메르 민족문화를 자랑하고 있다.
베트남과 중국문화의 침투
베트남의 건국설화에 의하면, 기원전 2879년에 반랑국이 세워진 것으로 되어 있다. 중국이 언제부터 베트남을 지배하였는가? 기원전 214년에 진시황이 남방을 경략하고 계림, 상, 남해의 3군을 설치하였다. 상군이 오늘날의 베트남 북부인 통킹 지방이었다는 설과 광서성의 일부라는 설로 갈라져 있다. 한무제는 기원전 11년 남월을 정복하고 7군을, 다음 해에 2군을 더하여 한 9군을 설치하였다.
9군 중 교지, 구진, 일남의 3군은 베트남 중북부에 설치되는데, 이때부터 중국의 베트남 지배는 확실한 것이다. 중국 지배에 대한 후한 초의 쯩짝, 쯩니 자매 반란이나, 삼국시대 조교의 반란은 비록 실패하였지만 여성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았음을 알려 준다. 6세기 교주의 이분은 쯩자매 이후 최대의 반란을 일으켜 만춘국을 세우고 독립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당은 7세기에 안남 도호부를 설치하였는데, 이때부터 베트남은 안남으로 불린다. 베트남에 중국의 문화가 깊숙이 침투한 때는 당나라 때이고, 강공보 형제는 당의 과거에 합격하여 관리 생활을 하였다.
몽골족 격퇴와 남북 대립
5대 10국 시대인 939년 오권이 남한과 투쟁하여 독립하는데, 이로써 베트남은 천 년간의 중국 지배에서 벗어나게 된다. 966년 정부령이 새 왕조를 창건한 때부터를 베트남의 진정한 독립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전여 왕조를 거쳐 최초의 장기 왕조인 이 왕조가 성립된다. 진 왕조 때 몽골족의 침입을 3번이나 격퇴한 사실은 베트남인의 긍지를 높여 주었다. 진 왕조를 찬탈한 호계모는 쭈놈의 사용을 권장하여 민족문화 건설에 노력하였다.
명의 영락제는 호씨 찬탈을 구실로 베트남에 출병하여 20년간 베트남은 명의 직접 지배를 받게 되었다. 영락제 사후 례 로이는 오랜 저항 끝에 베트남 사상 최장수 왕조인 여 왕조를 성립시켰다. 여 왕조는 백 년이 지난 후 막씨, 정씨, 우엔씨 등의 다툼으로 국력이 급속히 약해졌고, 이런 가운데서 특히 북의 정씨, 남의 우엔씨 간의 남북 대립은 170년이나 계속되었다.
베트남의 참파국 합병
베트남 중남부에는 2세기 말 참족에 의하여 임읍이 세워졌다. 주민은 말레이, 폴리네시안 계통으로 인도 문화를 수용하여 베트남, 중국과 끊임없이 투쟁하였다. 7세기 이후 이 지역은 참파국이 지배했는데 17세기에 가서야 베트남에 합병되었다.
스리바자야와 사일렌트 라
인도네시아에도 인도의 영향을 받아 7세기 수마트라의 팔렘방을 중심으로 스리비자야 왕국이 융성하였고, 자바 서부에는 사일렌트라가 일어나 8세기에 뛰어난 불교예술을 나타내는 보로부드르를 건립하였다.
마자파히트왕조와 아체왕국
자바 동부에서는 마타람 왕국이 일어나 10세기 그 절정을 이루었고, 13세기 말 마자파히트 왕조가 일어났는데 불교문화를 가진 자바 최후의 왕국이었다. 15세기 이후 자바 전체가 이슬람화 되었지만 유일하게 발리만이 힌두 불교의 중심지로 남게 되었고, 수마트라 북쪽의 아체 왕국이 이슬람교의 중심으로 발전하여 동남아의 메카로 알려지게 되었다.
바타비아
인도네시아에 네덜란드가 진출한 것은 16세기 말이었고, 얀 피터르스존 쿤 총독은 1619년 자카르타를 무력으로 정복하고 바타비아로 개칭하여 인도네시아 통치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네덜란드가 식민 통치한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령 동인도라는 뜻을 지닌 힌디아 벨란다로 불렸다.
랑카수카
말레이반도도 인도의 영향을 받았고 최초로 알려진 국가는 2세기에 랑카수카 왕국이었다. 15세기 초 자바인이 말라카 왕국을 건설하였다. 말라카는 수마트라와 자바 부근의 무역 중심지였기 때문에 외국 이슬람교도들과의 접촉이 잦더니 이슬람 국가로 변화하게 되었다.
루앙프라방
라오스는 인도의 영향을 받아 소승불교국이 되었는데, 14세기 루앙프라방을 수도로 발전하다가 18세기 초에는 루앙프라방, 북부의 비엔티엔, 남부의 참파삭 3 세력권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수코타이 왕국
타이는 인도의 영향을 받아 소승불교국이 되었는데, 13세기에 스리 인트라팃이 크메르의 지배를 벗어나 수코타이 왕국을 세움으로써 비약적인 발전을 하기 시작하였다. 람캄헹 왕은 1283년 타이 문자를 창제하여 타이 민족문화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차오푸라야 강 유역의 지배를 확고히 하였다.
아유타야 왕국의 수코타이 왕국 병합
타이에는 14세기 중엽 라마티 버디 1세에 의해 아유타야 왕국이 세워져, 수코타이 왕국을 병합하고 동남아의 강국으로 등장하였다. 이는 미얀마의 끊임없는 투쟁으로 16세기 말 미얀마에 15년간 속국이 되었으나, 나레수언 왕이 1584년 독립을 되찾았다. 타이에 유럽 각국이 진출한 후 17세기 후반 나라이 왕 때에는 네덜란드와 프랑스가 서로 타이 지배권을 놓고 경쟁하다가 1688년 프랑스의 지원을 받은 포올론이 처형당하고 나라이 왕도 죽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후 아유타야 왕국은 쇄국정책을 취하게 되었다.
파간 왕조시대
미얀마는 인도의 영향으로 소승불교국이 되었는데, 버마족인 아노라타가 파간 왕국을 세우면서 만족을 정복하고 중부 미얀마를 장악하였다. 파간 왕조시대에는 수많은 불탑이 세워져 파고다 왕조라고도 불리는데 몽골군의 침입으로 멸망하였다. 미얀마는 19세기에 영국의 지배를 받기 이전에는 몽골의 12년간 지배가 유일한 외국의 지배였다.
타웅 구왕조와 콘바웅왕조
미얀마는 몽골군이 물러난 다음에 다시 버마족, 먼족, 샨족 등이 할거하다가 16세기에 더빙스웨티에 의해 페구에 타웅구 왕조가 세워졌다. 버윙나웅 왕 때가 전성기로서 아유티아를 속국화하였다. 미얀마 최후의 왕조는 얼라웅퍼야가 창건한 콘바웅 왕조였다. 얼라웅퍼야는 만달레이 근교 쉬에보에 수도를 정한 후 미얀마 전역을 재통일하고 아유타야를 공략하기 시작하였다.
에스파냐의 필리핀 지배
필리핀은 1521년 마젤란에 의해 발견되었고, 에스파냐의 필립 황태자의 이름을 본떠서 필리핀이란 나라 이름이 생긴 것이다. 필리핀에는 에스파냐의 식민지배를 받기 이전 바랑가이라는 소규모의 독립된 부락이 많이 있었다. 바랑가이는 보통 30~100호 정도의 단위 가족으로 구성되었으며, 그 지도자는 다투라 불렸다. 이들은 지역이기주의 때문에 단결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것이 16세기 후반부터 300년 이상 에스파냐의 지배를 용이하게 하였다. 에스파냐의 지배는 필리핀을 동남아 유일의 가톨릭 국가가 되게 하였다.
망막박리 초기증상 7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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