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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일본 전국시대 통일전쟁 1편.

by 니루루 2022. 9. 30.

 

1. 일본 전국시대의 기간

일본 전국시대의 기간은 1467년 오닌의 난에서부터 무로마치 막부가 끝날 때까지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로마치 막부가 언제 끝나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데, 오다 노부나가 집권 이후라는 설도 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집권 이후라고 보는 학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야기로 보면  도쿠가와 이에야쓰 막부의 설립까지는 가야 이 전국시대가 끝났다고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2. 오닌의 난

가마쿠라 막부가 끝나고 무로마치 막부가 시작되는데, 무로마치 막부의 8대 쇼군으로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있었습니다. 쇼군 요시마사는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고 권력에 별 관심이 없는 한량이었는데 반해 그의 부인인 히노 도미코는 유달리 돈 욕심이 강한 여인이었습니다. 도미코의 집안이 막대한 부와 권력을 가진 가문이었는데도 도미코의 돈에 대한 집착은 엄청났다고 합니다. 당시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물자가 집중되었었는데, 도미크는 이를 이용해서 교토 곳곳에다가 검문소를 차리고 통과세 명목으로 세금을 받았으며, 고리대금 사업을 하는 등 돈이 된다는 일은 다 했다고 합니다.

한편, 쇼군 요시마사는 아직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을 때 후계자가 없는 것을 염려하여 출가한 동생을 설득하여 자신의 후계자로 낙점합니다. 요시마사는 동생에게 내가 훗날 아들이 생겨도 너에게 후계자의 자리를 주겠다고 큰소리치며 약속까지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요시마사의 아들이 도미코에게서 출생합니다. 도미코의 입장에서는 결단코 아들의 후계자 자리를 요시마사의 동생에게 양보할 수 없었습니다.

요시마사의 아들 요시히사는 장성하고 나서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삼촌을 암살할 계획을 세우게 되지만, 암살에 실패해버립니다. 이때부터 교토에 있는 유력 가문들은 요시마사의 아들과 동생 양쪽으로 갈라져서 전쟁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오닌의 난입니다.

3. 배신과 하극상이 난무하는 전국시대

서 군의 요시히사는 야마나 소젠과 손을 잡고, 동군의 요시미는 호소카와 가쓰모토와 손을 잡고 전쟁을 하게 되는데, 그때 동군 병력은 16만이었고, 서군 병력은 11만이어서 무려 30만 명이 교토에 밀집해 전쟁을 하는 꼴이었습니다. 당시는 교토뿐만 아니라 일본 전체적으로 모두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지방 파벌들이 분화하고 하극상이 번번이 일어났으며, 교토로 올라온 다이묘들이 자신들의 영지를 가신들에게 대리 관리하도록 하였는데 권력을 손에 쥔 가신들도 하극상을 하여 새로운 다이묘로 급부상했습니다. 어서 빨리 전쟁을 끝내서 수습해야 했지만, 교토에 있는 쇼군은 이미 허수아비였고, 교토에서 대치하고 있던 동군과 서 군은 대부분 용병이었기 때문에 전투를 서둘러 끝낼 마음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전쟁이란 명목으로 모여는 있지만, 교토에서 살면서 대치국면만 만들었기 때문에 이 전쟁은 무려 11년이나 가게 됩니다. 1477년에 화해를 하게 됩니다만 이미 전국 각지에 새로운 다이묘들은 부상하고 있는 데다가 쇼군은 허수아비가 되어버린 상태였습니다. 새롭게 부상한 다이묘들은 그 계층도 매우 다양해서 가신뿐만 아니라 상인도 있었고 평민도 있어서 그 내부에서도 갖은 갈등과 혼란이 있었지요.

4. 승병단과 잇키

한편, 전국시대에는 이런 사무라이 집단들 외에도 승병 단과 잇키가 있었는데요. 일본은 봉건사회였기 때문에 승병단이 무장 조직화되어 유난히 강했었으며 전국단위 조직이었기 때문에 다이묘들조차 쉽사리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잇키는 농민들이 사무라이의 약탈에 대한 반발로 만든 무장집단으로 이 역시 전국 조직이라서 매우 강력했습니다. 이처럼 중앙에서 전국을 통제하는 쇼군이 권력을 잃어버린 이 시점에서 일본 전체는 매우 혼란하여 통제 불가한 상태로 들어가 버리는데, 이 시점이 바로 진정한 전국시대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다이묘들은 한 가지 원칙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교토를 장악해야 천하를 지배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죠.

5. 전국시대 주요 다이묘들

당시 전국시대의 주요 다이묘들을 살펴보자면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쓰, 다케다 신겐, 우에스기 겐신, 호조 우지야스, 모리 모토나리, 가 있었습니다. 이 중에서 다케다 신겐, 우에스기 겐신, 호조 우지야스는 관동지방에서 삼국으로 긴 시간 동안 대치하게 되는데, 학자들은 이를 가리켜 관동 삼국지라고도 부르기도 합니다. 다케다 신겐과 겐신은 매우 전투를 잘하는 다이묘들이었고, 호조 우지야스는 방어가 뛰어났기 때문에 섣불리 어느 쪽을 확실히 칠 수가 없는 상황이서 대치국면이 길어지게 되는데, 몇몇 학자들은 이들이 조금만 일찍 관동 삼국지를 통일했다면 전국시대를 통일하는 것은 이 셋 중 하나였을 거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6. 오다 노부나가

전국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오다 노부나가를 살펴보면, 오다 노부나가가 권력을 잡은 지역은 오와리라는 곳이었습니다. 오와리는 상업의 요지일 뿐만 아니라 곡창지대였기 때문에 농민이 많고 경제적으로 매우 부유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산악지역의 사람들보다 전투력이 떨어졌으며 병력 모으기도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와리가 가지는 강점은 교토와 가장 가까이 있다는 점이었고, 이게 훗날 오다 노부나가에게 결정적인 메리트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