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팅에서는 유고슬라비아 전쟁시리즈 9편, 크로아티아 전쟁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디나모 레드스타 폭동사태, 전쟁의 도화선이 되다
크로아티아 전쟁의 도화선이 된 것은 다름 아닌 축구경기였습니다. 당시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는 라이벌 축구경기를 했는데, 세르비아가 크로아티아로 원정 와서 치러진 축구경기였습니다. 가뜩이나 서로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은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응원단은 서로 시비가 붙어 대규모의 유혈사태가 발생합니다. 이것을 디나모 레드스타 폭동사태라고 부릅니다. 이때 출동했던 크로아티아 경찰은 공교롭게도 세르비아인들이 많았고, 이들은 일방적으로 크로아티아인들만 폭력적인 진압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에 감정이 폭발한 크로아티아는 1년 후에 크로아티아 독립을 선포하고 전쟁까지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2. 크로아티아의 독립선언, 전쟁
이 때 크로아티아의 대통령은 프라뇨 투지만이라는 인물이었는데, 투지만은 후에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이끈 영웅인 동시에 전쟁범죄자라는 양면적인 평가를 받는 대통령이었습니다. 독립을 선포한 크로아티아의 목표는 유고연방으로부터 독립해서 국제사회와 유고연방의 인정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려면 유고연방군과 전쟁을 벌여서 협상에 유리한 지점을 차지해야 하는데 병력과 무기가 너무나 열세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투지만 대통령은 최대한 공격을 자제하고 슬로베니아처럼 여론전을 교묘하게 펼칠 것을 계획합니다.
3. 인종청소가 자행된 키예보 포위전
이런 와중에 결국 끔찍한 사태가 발생하고 맙니다. 크로아티아 내 세르비아 거주지역에 있던 3만 명의 세르비아 민병대가 크로아티아인들을 인종청소의 명목으로 학살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밀란 마르티치가 이끌던 세르비아 민병대의 학살은 너무도 잔인했는데, 그 원인은 그들이 정규군이 아니라 민병대라는 데 있었습니다. 정규군이었다면 전쟁범죄에 대해서 숙지하고 최대한 자제할 것을 훈련받지만 민병대는 전혀 그런 훈련을 받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민족감정이 워낙 쌓여있기 때문에 그 분노가 그대로 학살로 이어진 것입니다. 인종청소는 키예보 포위전에서 끔찍하게 자행되었습니다.
4. 세르비아의 두브로브니크 포격
이 와중에 유럽공동체 EC는 휴전을 위해 협상하기 시작하고 유고연방과 크로아티아는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 애를 씁니다. 군사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해야 했기에 투지만 대통령은 1991년 9월 동원령을 선포하고 크로아티아에 있는 유고연방군의 기지를 포위합니다. 동시에 영토 탈환작전도 진행합니다. 세르비아의 입장에서 세르비아의 영토를 최대한 확보해야 했기에 투지만의 의지를 꺾는 게 중요했습니다. 따라서 크로아티아의 가장 역사적인 도시이자 최고의 휴양지인 두브로브나크를 포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놓치지 않고 크로아티아는 서방언론에게 사진을 찍게 하여 세르비아의 잔인무도함을 부각하는 여론전을 펼치게 됩니다. 이는 큰 효과를 거두게 되고 국제여론에서 유고연방은 수많은 비난과 비판에 시달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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