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오늘은 한민족의 대식 문화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예로부터 우리는 "밥심"으로 살아가는 민족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요, 옛날에는 밥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먹었던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외국인들마저 놀랄 만큼 대단한 식사량,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조선인의 대식, 기록으로 만나다
역사 기록 속 한민족의 식사량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삼국유사》에는 무열왕이 하루에 쌀 3말과 꿩 9마리를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군 이여송은 조선 백성들이 먹는 고봉밥을 보고 “이렇게 많이 먹으니 국가 운영은 어떻게 하느냐”고 묻기도 했다고 하죠. 물론 이 모든 기록이 완전히 사실은 아닐 수 있습니다. 대식 기록은 종종 재력과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당시 한민족의 독특한 식문화와 풍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대식의 숨겨진 이유
① 밥그릇 크기와 실제 식사량
과거에 사용되던 밥그릇 크기를 보면, 대식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밥그릇은 350g 정도의 밥을 담을 수 있지만, 과거에는 훨씬 컸습니다.
- 조선시대: 약 690g
- 고려시대: 약 1,040g
- 고구려 시대: 무려 1,300g
밥만큼 반찬의 다양성도 적어, 밥과 국, 간단한 장아찌 정도로 한 끼를 해결했습니다. 그 결과, 한 끼 식사에서 주로 밥으로만 에너지를 충당해야 했습니다.
② 단백질 지렛대 가설
여러분, 혹시 단백질 지렛대 가설을 들어보셨나요? 이는 생명체가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할 경우, 필요한 단백질을 채울 때까지 과식을 하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 쌀의 한계
조선의 주식인 쌀은 단백질 함유량이 밀의 절반 수준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한 상태에서 탄수화물을 더 많이 먹게 되었죠. - 전통 농경 사회
육류 소비가 적고, 고단백 식품이 부족한 사회 구조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결과적으로 부족한 단백질을 채우기 위해 더 많은 밥을 먹어야 했던 것입니다.
③ 환경과 노동량
조선시대에는 노동량이 많고, 저장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음식을 한꺼번에 먹어야 하는 환경적 요인도 있었습니다.
- 쌀농사와 노동력
쌀농사는 밀농사보다 3배 이상의 노동력이 필요했습니다. 더 많은 노동량을 충당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식사량도 많아졌습니다. - 부패하기 쉬운 환경
한반도의 고온다습한 여름은 음식이 빠르게 부패하는 원인이 되었죠. 때문에 음식을 빨리 먹어야 했고, 과식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왜 옛날 사람들은 비만이 적었을까?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많은 양의 탄수화물을 섭취했음에도 옛날 사람들은 비만이 적었다는 점입니다. 반면, 현대인은 상대적으로 적게 먹음에도 비만율이 높아졌습니다.
- 활동량 차이
과거에는 대부분 농업과 육체노동을 주로 했기 때문에 높은 칼로리 소모가 가능했습니다. 반면 현대인은 주로 앉아서 생활하는 저활동적인 라이프스타일이 비만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 영양 불균형의 변화
과거에는 탄수화물 중심 식단으로 과식을 했지만, 현대인은 가공식품과 지방 섭취가 비만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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