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출생
이토 히로부미는 1841년에 부산 바로 건너편에 있는 야마구치 현의 가난한 농민인 하야시 주조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난 이후 아버지가 이토 집안의 양자로 가게 되는데요. 양자가 되어서 무사 신분이 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성도 하야시에서 이토로 바꾸게 됩니다. 처음에는 리스케, 슈스케라는 이름으로 불렷으며 야마구치 현에 있는 쇼카 손 주쿠에 들어가서 요시다 쇼잉의 제자가 됩니다.
2. 영국을 유학하고 충격에 빠지다
이토 히로부미는 다카스기 신사쿠등과 함께 존왕양이 운동 즉, 쇄국정책과 중앙집권화를 주장한 운동으로 천황을 공경하고 외국인을 쫓아내자고 주장하는데요. 1863년에는 번의 명령으로 이노우에 카오루 등과 함께 영국에 유학을 가게 됩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산업혁명 이후 계속 발전하고 있는 영국산업을 보고 크게 놀랍니다. 당시 이토 히로부미는 조이운동이라고 해서 시모노세키 해협에서 외국 함선을 향해 포격하는 무리의 선두주자였는데요.
그러나 영국, 프랑스, 미국, 네덜란드 4개국 함대가 이에 보복하기 위해 조슈항을 공격할 계획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서둘러 영국에서 귀국하게 됩니다. 그는 이대로 외국의 함대들과 계속 전쟁을 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며 설득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외국 함대의 공격을 받아 시모노세키 포대는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들과 굴욕적인 강화를 맺게됩니다.
3. 명치 정부의 요직에 오르다
이러한 번의 태도에 분노한 이토 히로부미는 다카스키 신사쿠 등과 함께 거병하여 번의 주도권을 빼앗아서 신정부 수립의 발판을 마련합니다. 이후 이토 히로부미는 조슈항을 대표해서 다른 번과 교섭한다든지 영국으로부터 무기와 기선을 받아들이는 등 교섭에 힘을 씁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소망대로 도쿠가와막부가 무너지고 명치 신정부가 성립되자 그는 차례로 중요한 요직에 오르게 됩니다. 대장성에 들어가서 화폐제도 조사를 맡았고 1871년에는 이와쿠라 토모미와 함께 미국과 유럽 시찰여행에 오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2년 후에 귀국하자 사이고 타카모리 등이 정한론을 주장하자 그는 이와쿠라 토모미와 함께 국내 정비가 선결문제라고 하면서 정한론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게 됩니다. 그 결과 정한론이 수그러들고, 그들이 정부 내에서 일제히 물러나자 이토 히로부미는 드디어 참 그다음에는고부 쿄라고 해서 공업 육성을 위한 관청의 장관이라는 요직에 오르게 됩니다. 정부 내에서 주요 인사로 자리 잡게 된 그는 막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함께 맞서 싸웠던 동지들이 일찍 사망하게 되자 내무대신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는 정부의 헌법 내용과 의회 개설의 시기에 대해 급진적 의견을 주장해왔던 와세다 대학의 설립자 오오쿠마 시게노부와 그 무리들을 추방하고 명치 정부의 최고 지도자에까지 오릅니다.
4. 일본 최초의 총리가 되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헌법을 만들 필요성을 통감하고 1882년에 독일로 건너가 독일 헌법을 공부하고 돌아와서 헌법 제정에 착수하게 되는데요. 또한 국회 개설에 대비해서 1885년 내각 제도를 시행하고 일본에서 초대 총리대신 수상에 오릅니다. 즉 일본 최초의 총리가 이토 히로부미가 된 것입니다.
5. 대일본제국 헌법 제정의 기초를 만들다
1889년 천황에게 절대군주의 지위를 주는 대일본제국헌법을 제정하게 됩니다. 대일본제국헌법은 이토 히로부미가 유럽에 가서 검토, 공부, 분석한 원안을 올린 내용이었습니다. 이 헌법은 겉으로는 근대적 형태를 취한 헌법이지만 철저한 천왕 주권설에 의거하여 천황의 힘을 인정하고 일본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일정한 범위 내에서 제한을 가한 입헌군주제의 형식이었습니다. 이 헌법은 천황에게 일본의 군대를 직접 지휘할 수 있는 권력을 부여했는데요. 후에 1947년 5월 연합군 총사령부에 의해 폐지되게 됩니다.
6. 안중근 의사에 의해 살해당하다
이토 히로부미는 이후에도 4번이나 총리대신 수상을 역임하는데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대한제국의 총감으로 부임합니다. 그는 대한제국을 일본의 식민지로 거의 만들어가던 시점인 1909년에 러시아와의 관계 조정을 위해 만주 시찰을 갔을 때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의 총을 맞아 사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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