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밀양
감독 : 이창동
출연 : 전도연 송강호
개봉 : 2007. 5. 23.
줄거리
이신애는 아들 준과 함께 밀양으로 오던 중 국도에서 자동차가 고장이 나고, 카센터를 운영 중인 김종찬이 자동차 수리를 하러 오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다. 여행이 아니라 살러 왔다는 작고 곱상한 신애에게 종찬은 호감을 느끼게 된다.
밀양으로 이사 온 신애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피아노 교습소를 열게 된다. 하지만 신애는 주민들과 쉽게 섞이지 못하고 그들의 텃새를 경계하느라 재산이 많은 듯 말하고 다니며 종찬을 통해 땅을 보러 다닌다. 한편 종찬은 신애에게 노골적으로 관심을 보이며 접근하지만 신애는 그런 종찬이 불편하고 귀찮기만 하다.
어느 날 아들이 유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에 빠진 신애는 종찬을 찾아가지만 종찬이 홀로 집에서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며 신애는 차마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돌아선다. 유괴범과의 협상 과정에서 신애는 아들의 몸값으로 신문지로 조잡하게 가짜 돈을 준비하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의 거짓을 유괴범에게 시인하게 되고, 아들 준은 유괴범에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아들의 사망신고를 하고 돌아오는 길, 신애는 무언가에 씐 듯 갑자기 헛구역질을 하고 오한에 떠는데 그러다 길가에 나부끼는 기도회 현수막을 보고 막연히 교회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오열을 하는 신애. 신애를 따라온 종찬은 그녀를 말없이 지켜만 보는데, 목사가 신애의 머리 위에 가만히 손을 얹자 신애의 울음은 놀랍게도 뚝 그친다.
이후 신애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며 열성적으로 집회에 참석하고 교회를 찾는다. 그녀는 신도들에게 이제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도 말하고 이웃 주민들에게도 자신은 이제 행복하다고 말하고 다닌다. 그러나 혼자 있을 때 신애는 여전히 아들 생각에 눈물을 쏟고 낯선 타인을 극도로 경계했다. 그렇게 자신의 의지와 행동이 점점 괴리되는 상황에서 그녀가 최후로 선택한 것은 유괴범에 대한 용서였다.
아들을 죽인 유괴범을 용서하겠다는 결심을 한 신애는 교회 목사와 신도들에게 자신의 뜻을 밝히고 그들의 격려 속에 유괴범을 직접 만나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그렇게 신애는 종찬과 함께 교도소에서 유괴범을 대면하는데 유괴범은 신애의 예상과는 다르게 너무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모습에 당황한 신애는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되려 유괴범이 신애를 위로하며 자신은 이미 하나님께 용서를 받아 마음이 편안하다는 말을 한다, 그 말에 큰 충격을 받은 신애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된다. 교습소 운영도 팽개치고 하루 종일 누워만 있거나 교회에 가서 십자가를 보며 의자를 꽝꽝 내려친다. 보다 못한 교회 사람들이 그녀를 위로하려고 하지만 소용없었다.
종교를 가진 후 마음의 평화를 얻고 행복하다고 떠들고 다녔지만 실상은 아들을 잃은 슬픔을 극복하지 못한 신애. 신애의 정신병은 심해져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치료가 끝난 신애는 종찬의 배웅을 받아 살던 동네로 돌아온다. 길어진 머리를 정리하려 미용실에 들린 신애와 종찬. 그러나 그곳에서 유괴범의 딸과 조우하게 되는데, 신애는 결국 머리를 자르다 말고 미용실을 뛰쳐나온다. 그리고는 하늘을 매섭게 노려본다.
결국 종찬에게 말도 없이 집으로 돌아온 신애. 스스로 머리를 자르려고 하는데 어느새 종찬이 집으로 찾아와 그녀가 머리를 자를 수 있게 거울을 들어준다.
카메라는 두 사람이 있는 마당 한 구석에 지저분하고 더러운 땅 위에 햇볕을 비추며 영화는 끝이 난다.
등장인물
신애
남편과 사별 후 밀양에 아들과 함께 오게 된 평범한 주부. 불행히도 아들마저 유괴로 잃게 된 이후에 교회에 깊이 빠지게 되고 유괴범을 용서하러 면회를 갔다가 충격을 받고 기행을 하게 된다.
김종찬
밀양에서 카센터를 운영하는 노총각으로 신애를 좋아한다. 술과 담배를 좋아하고 다방 여직원을 희롱하는 날라리지만 고통받는 신애 옆에서 그에 공감하며 그를 보듬어주며 성장하게 된다.
리뷰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교회에서는 이 영화가 다루는 문제에 대해 활발하게 토론이 이루어졌던 적이 있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 안티 기독교적인 영화라고 쉽게 말하곤 하는데 정작 이 영화에 나오는 개신교인들은 악의라곤 없어 보이며 촬영에는 실제 목사와 교인들이 대거 협조했다고 한다. 기독교가 갖는 구원의 딜레마에 대해 생각보다도 더 깊이 다루고 있어서 기독교 영화라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이다.
이창동 감독은 신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영화이며 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신애 스스로 신의 뜻이라고 해석하고 신을 증오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걸 어떤 관객들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신애라는 인물은 허위 허식이 강한 성격이다. 무시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부자 행세를 하고, 아들이 유괴 살해당해 그대로 사람들에게 불쌍한 여인으로 남기보다는 기독교를 믿고 새 삶을 얻어 행복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외롭고 고독한 그녀가 사람들을 향해 가지는 방어기제는 자신을 좀 더 세속적으로 우월한 사람임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그 점이 그녀의 진짜 모습과 마음 상태와 괴리를 일으켰고 그 괴리감에서 오는 모순에 대한 분노를 신이라는 존재에 덮어 씌우고 분노를 표출하는 편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다른 해석으로 대부분의 현실에서 신은 침묵하고 악은 살아움직이는 실체로 작용한다. 이는 이창동 감독의 세계관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영화에서의 신애의 분노는 침묵하는 신에 대한 분노로 해석해서 영화를 보는 것도 재밌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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